한일의 생각

니체가 말했다 : "반박 시 님 말이 맞음"

Hanil한일 2024. 4. 24. 16:54

"신은 죽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등 수많은 명언을 남긴 프레드리히 니체에 대한 가벼운 글이다. 

위 명언들이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신을 죽인 야훼 살해범(?), 운명을 사랑한 낙관주의자 등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나는 나만의 인생관이 어렴풋하게 있었음에도 지능이슈로  명쾌하게 정리를 못 하고 있었지만, 니체와 쇼펜하우어라는 두 위대한 지성들의 이론을 접하면서 내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들 중 많은 것들을 무려 100년 전에 깔끔하게 정리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니체의 생각들 중에서 가볍게 니체의 인생관에 대해서 나누어 보려고 한다. 


니체가 살던 19세기 후반에는, 이전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상들이 격동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첫째, 유럽 지식인 층을 중심으로 무신론이 떠오르면서, 기독교적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하여 사람들이 따라야 할 절대적인 이정표가 사라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허무주의가 떠오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못 찾고 방황하는 가운데, 니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음을 제안하였다.

신은 죽었다. 다른 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절대적인 진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개인적인 해석(또는 관점)만 존재할 뿐이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 현재가 아닌 내세의 삶을 찾기 위한 노력은, 오히려 지금 현재의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기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니체가 생각하는 개개인의 인생의 의미주관적이고,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여기서 뛰어난 정신을 가진 사람초인(Ubermensch, 위버멘쉬) 이라는 모범적인 인간상을 제시했다. 

초인은, 반항적이고, 자신감 있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열망을 쫓는 독립적인 사람이다.


첫째, 초인은 기존의 '선악'개념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체계를 창조한다.

이들은 타인이 정해준 가치관이 아니라, 자신이 독립적으로 세운 가치관을 바탕으로 세상을 독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둘째, 초인은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다루는 것에 오히려 기쁨을 느낀다. 

초인은 본인을 능숙히 제어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가릴 줄 안다. 또한 본인을 채찍질 하면서 고통스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삶의 고통을 극복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더 나아가 삶의 필연적인 면마저 어리숙하게라도 
춤추고, 노래하고, 웃는 것으로 극복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이다. 

셋째, 초인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남의 가치와 의견을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안다.


노예는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가며, 노예는 본인이 선하다고 생각하기 위해서 본인과 대립하거나 억압하는 것을 악하다고 생각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반면 초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긍정할 줄 알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와 대립하는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요약하면, 초인은 '타인'이 만들어준 가치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가치'를 추구하며,  '창조적인 힘'으로 끊임없이 몰아치는 가혹한 삶의 고통과 허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남들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귀족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삶이 가혹하다고 해서 이상적인 종교나 도덕, 이념, 알코올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로 니체는 젊을땐 술을 좋아했지만 나중에는 알코올이 현실도피를 부추긴다고 경멸했다) 

자기 자신의 현 상태를 긍정하고, 가혹하고 불합리한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며 그것을 극복하는 삶에서 의미를 찾으며, 심지어 그 고통을 기꺼이 자신의 성장을 위한 자극제로 삼는다. 

이러한 초인의 삶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운명을 사랑하라, 즉 Amor Fati (아모르 파티) 다. 

 

니체가 기존의 선악을 따르는 사람 보다는 본인만의 선악을 창조하는 사람을 긍정했던 이유는, 니체는 기성세대의 윤리와 도덕 "노예 도덕(Sklavenmoral)"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에게 억압당하는 노예들, 즉 권력, 욕망, 창조성 등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는 저 악한 자들과는 다른 존재, 선한 존재가 되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위선적으로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평가절하" 하고 그들이 가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져야만 했던 가치들을 칭송하게 되었고 한다.

예를 들어서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굴복" 을 "순종"으로 칭송하게 되었으며, "복수를 할 수 없는 것"을 "용서"로 칭송하게 되었다.

니체는 이러한 전통적인 기독교에서 권장하던 가치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능동적인 가치체계를 만들고 이를 제어하는 능력까지 보유한 초인이 되는 것이 가장 으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니체사상의 한계 또한 드러나는데, 니체는 아주 일부의 사람만 진정한 초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니체는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은 초인과 노예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나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며, 이 때문에 그의 사상은 엘리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두번째로, 니체가 살던 시기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대중 민주주의의 발전이 있었다.

전통적인 귀족 중심의 사회를 대체하는 대중 민주주의가 떠오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서로를 서로와 더욱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이전 세대보다 훨씬 증가한 부러움(envy)와 질투라는 감정이 생기게 되었고, 소화될 수 없는 질투와 감정은 많은 사회적 소모를 야기하게 되었다. 니체는 이러한 세태에서 다음과 같이 조언하였다. 

부러움, 질투라는 감정을 긍정하라.

니체는 부러움과 질투라는 욕망을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한 발판로 삼으라고 했다.

물론, 우리가 언제나 항상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진짜 욕망을 마주해야 하며 욕망과 장렬히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욕망에 맞서 당당하게 맞서고 난 후에야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슬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부러운과 질투라는 원초적인 욕망을 '죄악되고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 취급하며 회피하려고 하는 기성세대의 '노예 도덕'적인 마인드셋 보다는, 

오히려 욕망의 긍정적인 부분 과 부정적인 부분을 모두 인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더욱 나은 삶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니체사상 중 '영원회귀', '힘에대한 의지' 등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도 많으나 니체의 인생관과 연관되는 부분만 짧게 정리해 보았다.

위의 내용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의 사상 중에서  도덕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부분도 존재하고 이러한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니체는 타인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담습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

그의 유명한 저서『선악의 저편』에서 본인의 논리와 생각을 반박하고 싶다면 "오히려 좋다" 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오히려 좋아 드립의 원조다양한 관점과 해석에 관대한 사람이다.

니체의 생각을 읽으면서 반박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니체가 원하는 자세였을 것이다.

본문과 전혀 연관성이 없지만, 아무래도 이 글을 읽는 한국인이라면 프레드릭 니체보다는 김연자 선생님의 '아모르 파티' 가 생각날 것 같아 아모르 파티의 가사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2018년 부산대 축제에서 공연하는 것을 직관했는데 정말로 재밌었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 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 김연자 선생님 -